- 민주주의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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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칼럼] 좌표 찍기와 ‘자유주의적 전체주의’
“나는 당신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목숨을 걸고 당신의 표현의 자유를 옹호할 것이다.” 자유주의사상을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많이 인용되는 문장이다.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가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볼테르 연구자가 그의 ‘관용’사상을 응축해 만든 표현이 볼테르의 말로 잘못 알려진 것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이건, 이 말처럼 자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다양성이며 이를 보장하기 위한 사상, 표현, 언론의 자유 같은 자유권이다.
우리가 흔히 ‘독재’라고 부르는 ‘권위주의’체제는 자유주의와 달리 다양성과 사상, 표현, 언론의 자유를 억압한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같은 87년 민주화 이전 정권들이 그러했다. 그러나 자유주의, 그 진화된 형태인 자유민주주의의 정반대에 서 있는 사상과 체제는 ‘전체주의’다. 파시즘이나 과거 사회주의, 북한 같은 체제를 가리키는 전체주의의 핵심은 다양성을 부정하는 획일성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전체주의에 가까웠던 체제는 유신이다. 유신체제는 단순히 사상, 표현, 언론의 자유를 억압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머리 길이, 치마 길이까지 통제했다. 국가의 억압도구는 경찰봉이나 전기고문만이 아니라 자와 가위였다. 경찰은 자와 가위를 가지고 다니며 치마 길이와 머리 길이를 쟀고 정부 기준보다 긴 머리는 가위로 잘라버렸다.
이제 민주화가 35년이 지나갔지만, 우리 사회에는 전체주의가 생겨나고 있다. 나는 특히 이 전체주의가 군사독재에 뿌리를 둔 극우보수세력이 아니라 소위 ‘민주화운동’세력에서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낀다. 이는 파시즘이나 북한과 달리, 형용모순이긴 하지만, 자유주의의 한 변형으로 생겨난 ‘전체주의적 자유주의’ 내지 ‘자유주의적 전체주의’이다. 엉뚱하게도 민주화운동에 뿌리를 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자유주의 진영에서 내부비판이나 다른 견해를 허용하지 않고 일사불란한 획일성을 강요하는 전체주의가 자리 잡고 말았다.
촛불항쟁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5년 만에, 부끄럽게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고 만 것은 상당 부분 이 자유주의적 전체주의 때문이다. 조국사태를 계기로 전면화한 이 전체주의는 당내에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금태섭 의원에 대한 ‘집단린치’와 공천 탈락으로 이어졌다. 조응천 의원 등 당의 주류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보인 의원들에게도 “당신이 쓰레기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면 성공입니다. 그쪽 일당들하고 다 같이 탈당하고 더민주 이름 더럽히지 말아라” 등 문자폭탄을 보냈다. 반면에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강경론자들에게 지지가 쏟아졌다.
이 같은 자유주의적 전체주의의 결정판은 ‘좌표 찍기’다. 이는 정치인, 검사, 판사, 지식인, 나아가 일반시민까지 자기들 마음에 안 드는 입장을 개진하는 사람의 신상목록을 SNS 등에 공개해 문자폭탄을 유도, 심리적으로 응징하는 인터넷 시대의 무서운 집단폭력이다. 특히 자유와 민주주의를 목청 높여 외치던 지식인들이 이에 앞장서니, 절망적이다. 이는 자신들은 틀릴 수 없다는 무오류의 독단과 환상을 강화했고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자기정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봉쇄했다. 이것은 ‘집단지성’이 아니라 우리 편은 무조건 ‘신격화’하고 적은 ‘악마화’하는 ‘집단신앙’이다. 물론 주체사상파 등 과거 운동권에도 내부적으로 전체주의가 있었지만 이들은 자유주의자도, 주류도 아닌 ‘소수 좌파’였다. 자유주의적 전체주의가 무서운 것은 이들이 자신들을 자유를 존중하는 자유주의자, 민주주의자라고 믿고 있으며 권력을 잡고 있는 주류세력이라는 점이다. 이 점에서 자유주의적 전체주의는 과거 전체주의보다 어느 면에서는 더 위험하다.
역사는 단선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자유주의적 전체주의에 따른 자기정정의 실패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승리했다. 그 결과 역사가 후퇴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패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지지자들이 무엇을 배우느냐는 것이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식의 집단최면이 아니라 뼈를 깎는 성찰을 통해 집단사고와 자유주의적 전체주의를 벗어날 때 패배를 ‘두 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로 만들 수 있다. 자유주의의 거장 존 스튜어트 밀은 말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의견이고, 한 사람만 반대의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