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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손호철 칼럼] 세 개의 대한민국, 이제 공생이다

  • 입력 2022.03.08 16:10      조회 927
    • 손호철 정의정책연구소 이사장,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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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이다. 그것은 내일이면 지겹고 역겨운 대선이 드디어 끝난다는 소식이다. 내일 누가 웃을지 모르지만, 대선 과정은 절망 그 자체였다. 이처럼 저질이고 네거티브가 난무한 선거는 없었다. 이렇게 된 구조적 원인은 문재인 정부가 제공했다. 역사적인 촛불항쟁 덕으로 집권했고 촛불연정이 시대적 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실력도 없으면서 권력욕에 눈이 멀어 승자독식으로 나아갔다가 5년 만에 촛불항쟁을 다 말아먹고, 정권심판론과 정권교체론이 다수가 되도록 만들었다. 국민의힘이 ‘국민이 키운 윤석열’이라는 구호를 들고 나왔지만, 윤석열을 키운 것은 국민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재명 후보는 너무 흠집이 많아 많은 국민들을 절망시켰다. 오죽했으면 민주화진영과 여권 출신인 정운현 전 이낙연캠프공보단장이 괴물대통령보다는 식물대통령이 낫다며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겠는가? 윤 후보도 매한가지다. 여러 주변 문제를 넘어 가장 큰 문제는 당초 약속했고 기대했던 ‘보수의 혁신’, 중도·진보를 포함한 ‘압도적 정권교체’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낡은 색깔론 등 냉전적 보수세력에 포섭되고 만 것이다. 아니 기존의 냉전적 보수세력보다도 더 극우포퓰리즘으로 나아가 한국판 트럼프, 곧 ‘윤럼프’가 되고 만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겨운 선거가 끝난다는 반가운 소식 뒤에는 슬픈 소식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총만 들지 않았지 사실상 ‘준내전상태’에 이른 것 같은 정치적 갈등과 ‘증오의 정치’, 다른 진영은 박멸해버려야 한다는 ‘박멸의 정치’는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대선은 후보의 검증과 토론이 아니라 그것이 가짜 뉴스더라도 자기들이 믿어온 소신만을 재확인하고 확증편향만을 강화한 ‘귀 막은 대화’(소위 ‘Dialogue of the Deaf’)에 불과했다. 따라서 대선 후에도 ‘두 개의 대한민국’은 계속될 것이다. 아니 더 분리될 것이다. 한심한 것은 이 갈등이 사실 이념적 차이도 별로 크지 않은 ‘기득권세력’ ‘주류세력’, 넓은 의미의 ‘보수세력’ 내부의 갈등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두 개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이들 거대양당과 주류사회로부터 소외된 비정규직,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대한민국, 대선 과정에서조차도 소외되고 주목받지 못한 또 다른 ‘잊힌 대한민국’이 숨겨져 있는 ‘세 개의 대한민국’이다.

현실이 이러하기에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승자, 패자가 모두 추구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은 ‘공생’이다. 지금 같은 증오의 정치, 박멸의 정치는 이제 끝내야 한다. 생각이 다르다고, 대립 세력을 킬링필드로 보낼 수도, 두 나라로 나누어 살 수도 없지 않은가? 주목할 것은 증오의 정치, 박멸의 정치의 밑바닥에는 우리 정치의 기본 틀인 승자독식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멸의 정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승자독식주의’를 넘어 ‘공생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세 개의 대한민국을 끌어안는 협치로부터 출발해 다양한 정치세력이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가는 ‘협의민주주의’ ‘합의민주주의’로 나갈 수 있도록 정치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그래야 증오의 정치가 내전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다양한 약자의 목소리를 국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지난번 도입한 연동형비례대표제를 확대하고 민의를 모욕하는 위성정당을 금지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도 내각제로 바꿔야 한다. 대통령제하에서는 승자독식주의, 증오의 정치, 박멸의 정치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공생만이 살 길인 이유는 보다 근본적이다. 대선에서 심상정 정의당후보 이외에 주목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지구의 존망 자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기후위기, 생태위기에 처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시작에 불과하다. 거대양당 후보가 네거티브로 진흙탕싸움만 하고 있던 2월 말, 유엔은 중요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정책을 강화하지 않는 한 80년 안에 절반 이상의 생물이 멸종위기에 처하고 세계 인구의 절반인 40억명이 물 부족에 시달리며 26억명이 전염병에 노출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연과 지구를 생각하고 지구 존망을 고민하는 ‘지구 공생의 정치’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누가 이기든, 공생만이 살 길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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