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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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칼럼] 지역주의는 파열하는가
“교수님, 한국에는 다른 지역당에는 투표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있나요?” 200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명문대학인 UCLA에서 한국 정치에 대한 특강을 했다. 특강 후 질의응답 시간에 한 미국 학생이 영남은 한나라당이, 호남지역은 새천년민주당이 싹쓸이를 한 2000년 총선 결과에 대해 이같이 질문했다. 한국 정치를 전공한 정치학자로 수많은 강의와 학술회의에 참석했지만, 내가 받아본 질문 중 가장 부끄럽고 당혹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렇다. 1987년 대통령 선거 이후 한국 정치를 지배해온 것은 단연코 지역주의다.
이 같은 지역주의 지배구조에 파열이 생기고 있다. 대구·경북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출신지역이 안동이라는 사실, 육사 안동 이전 공약 등과 관련해, 이 후보 지지율이 20% 이상을 기록하고 있어 30% 득표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가 10% 득표에 그친 호남에서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지지율이 일부 여론조사에서 20%를 넘어 득표율 목표를 20%에서 30%로 상향조정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이같이 지역주의에 파열을 내고 있는 것이 바로 세대균열이라는 사실이다. 한국 정치에 세대균열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02년 대선이다. 2030은 노무현 후보를, 5060은 이회창 후보를 밀었다.
2007년 대선에서 잠시 사라졌던 세대갈등은 이후 한국 정치의 확실한 갈등의 축으로 자리 잡았다. 박근혜와 문재인 후보가 대결했던 2012년 대선에서 세대균열지수는 34%를 기록했다. 박근혜가 5060에게 65%의 지지를 받았다면 2030에게는 34%포인트가 적은 31% 지지밖에 못 받았고, 문재인은 그 반대였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도 지역주의보다는 약한 것이었다. 지역균열은 무려 58%로 박근혜가 영남에서 68%를 받았다면 호남에서는 10%밖에 못 받았고, 문재인은 반대로 호남에서 영남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표를 받았다. 두 가지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지역주의가 아직도 가장 강력한 갈등구조이지만 점점 약해지고 있다면, 세대갈등은 점점 심해지고 있는 추세다. 둘째, 지난해 경향신문 칼럼(‘진보노인? 청년보수?’)에서 지적했듯이, 세대갈등이 예전에는 ‘청년진보 대 노인보수’의 구도였다면, 최근 들어 진보세대인 386이 50대에 들어서고 1997년 경제위기 후 태어나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속에서 자라나 ‘능력’을 강조하는 소위 ‘공정세대’인 20대, 특히 20대 남성의 보수화로 오히려 ‘진보노인, 청년보수’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2030 남성은 60대 이상 남성들보다도 많은 72.2%가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했다. 2월 초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에서 윤석열은 48%로 이재명보다 2배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 같은 세대균열이 지역주의에 파열을 내고 있다. 윤석열 후보가 호남 20대, 특히 20대 남자들에서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1월 말 호남지역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후보는 20대에서 29.5% 지지율을 보였고 특히 20대 남자에서는 46.7%로 이재명 후보의 28.6%를 크게 앞질렀다. 한 여론조사기관이 1월 말 실시한 대구·경북지역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후보가 대구 전체로는 19.1%의 지지에 그쳤지만 40대에서는 윤 후보와 비슷한 35.2%의 지지를 받았다. 경북에서도 전체로는 17.8%의 지지에, 20대에서는 10.8% 지지에 그쳤지만, 50대에서는 27.4%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조사 결과가 실제 투표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이를 바라보는 감정은 양면적이다.
지역주의가 파열이 나고 있다는 점에서 박수를 칠 일이다. 이제 지역주의는 넘어서야 한다. 그러나 세대 역시 계급과 같이 후천적인 이해관계나 이념에 기초한 2차적 균열이 아니라 지역과 마찬가지로 1차적 균열이다. 거지고 재벌이고 같은 지역이면 지역당을 지지하는 ‘초계급적 지역연합’이 흙수저고 금수저고 같은 세대면 같은 당을 지지하는 ‘초계급적 세대연합’으로 대치되어 영호남이라는 지역, 2030과 5060이라는 세대를 넘어 계층계급적으로 이해를 같이하는 노동자와 민중이 함께 손을 잡는 ‘초지역·초세대적 계급연합’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게다가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세대가 진보가 아니라 보수의 텃밭이 되고 있다니, 우울해진다. 특히 여성가족부 폐지 등 20대 남자들을 겨냥한 반페미니즘 우익 포퓰리즘이 위세를 떨치고 있으니 걱정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