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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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진보정치] K-민주주의는 실패했다
‘케이’(K)를 앞에 붙여 한국을 자랑하는 말들이 유행이다. 그 가운데에는 케이-민주주의도 있다. 얼핏 보면, ‘지나친’ 자랑 같지는 않다. 아시아에서 한국처럼 여러 차례 선거로 정권을 바꾼 나라가 몇이나 되나. 주로 영국 쪽에서 나온 민주주의의 통속적 정의로 “피 흘리지 않고 왕의 목을 치는 체제”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대한민국 6공화국만큼 이 기준에 부합하는 체제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케이-민주주의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과연 외관만큼 자랑할 거리가 있는가. 케이-민주주의의 실체를 제대로 알려면, 비교 대상이 될 만한 다른 나라 정치를 살펴봐야 한다. 11월24일 독일에서는 총선 이후 두달 만에 새 정부 출범이 결정됐다. 1당이 된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자유민주당이 이른바 ‘신호등’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연립정부를 결성하기로 하면서 세 당이 내놓은 정책 협약이다. 사회민주당 주도로 최저임금을 시간당 12유로(1만6천원)로 올리기로 했고, 녹색당의 목소리가 반영돼 석탄 화력발전을 예정보다 8년 더 이른 2030년에 중단하기로 했다. 또한 선거연령을 16살로 낮추고 이주민이 보다 쉽게 독일 시민권을 인정받게 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이런 정책을 앞으로 사회민주당 소속 총리, 녹색당 소속 기후위기대응장관, 자유민주당 소속 재무장관이 추진해나겠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으레 나오는 반론이 있다. 나라마다 독특한 사정이 있으니 정치나 문화를 놓고 우열을 논할 수는 없으며, 다른 나라 사례를 마치 교과서처럼 따라 배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케이-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다른 응용 사례들과 비교하며 다시 돌아봐야 한다. 비교 없이 성찰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사코 그런 비교를 거부하다 망한 나라가 조선 왕조다.
일단 독일 사례를 거울로 삼아 케이-민주주의의 민낯을 살펴보자. 독일에서는 사회민주당에 표를 던진 25.7%, 녹색당과 자유민주당에 각각 투표한 14.8%, 11.5%가 선거를 통해 권력의 주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총 52%가 어떻게든 자신이 지지하는 공약을 차기 정부 정책에 반영시켰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도대체 누가 승자인지 알 수 없다. 대통령 당선자를 낸 정당이 아닌 다른 정당들에 표를 던진 이들은 모조리 패배자가 된다. 그렇다고 선거에서 이긴 정당에 투표한 이들이 실제로 승자냐면 그것도 아니다. 19대 대선에서 41.1%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지만, 문재인 후보의 공약 대부분은 그가 속한 당이 국회에서 3분의 2를 넘보는 의석을 점하고도 실현되지 않았다. 야당들이 열심히 반대해서가 아니었다. 온갖 정치 논리를 들며 여당 스스로 접어 버렸다. 케이-민주주의에서는 양대 정당의 정치 엘리트들을 제외하면, 실은 거의 모두가 패배자다.
왜 이런 극심한 차이가 나타나는가? 단지 대통령제냐 내각제냐 하는 문제만은 아니다. 이와 함께, 시민사회를 제도정치에 반영시키는 통로인 정당정치 지형과 선거제도의 문제가 있고, 현대 사회에서 대의정치가 맡아야 할 핵심 역할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해와 합의가 다르다는 문제가 있다. 아무튼 이런 점에서 케이-민주주의와 크게 다른 독일 민주주의는 기후위기 등의 대응에서 성큼 앞서가고 있는 반면 한국 정치는 사회의 위기를 더욱 부추기고만 있다.
지금 일단 필요한 것은 케이-민주주의, 즉 6공화국 민주주의가 현대 사회의 변동과 위기 속에서 철저히 실패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이를 한사코 부인하며 “왕의 목을 쳤던”(사실은 이를 가장했던) 흐릿한 기억 속에 머물러 있기에 실패는 더욱 돌이킬 수 없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앉아서 멸망을 기다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케이-민주주의와는 ‘다른’ 민주주의가 절실히 필요하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