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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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기점에 선 지방정부의 혁신과 협치
1. 2010년대 ‘협치와 혁신’ 시정의 배경
‘협치와 혁신’은 지난 2010년대 서울시 시정(민선 5,6,7기)을 이끌어 왔던 핵심철학이었고, 행정의 원칙이기도 했다. 서울시정은 그 시기에 일관되게 ‘시민의 참여’에서 시작해서 시민의 참여로 끝났다. ‘시민이 시장이다’라는 원칙이나 ‘현장에 답이 있다’는 원칙아래 청책, 현장 시장실, 각종 위원회제도 운영 등 다양한 정책들을 시도했다.
이는 박원순이라는 특정 인물과 별도로 한국의 지방자치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는 ‘주민참여, 주민이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행정’이라고 하는 그간 우리 지방정부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하거나 형식적으로만 취급되었던 원칙을 전면적으로 구현하려는 첫 시도였기 때문이다. 서울시 시정의 수 많은 사례들이 다른 지방정부들로 확산되고 응용되었던 것도 바로 지방정부가 원래 추구하려던 철학과 원칙이 구현된 경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민생활의 인접공간에서는 마을공동체 운동, 청년운동, 사회적경제운동, 에너지자립마을, 도시재생 운동 등의 공동체 기반 주민참여가 활성화되었다. 그 정점에 주민자치회 전환과 운영이 있다. 주민자치회는 과거처럼 단순히 426개 동에서 주민협의모임을 넘어 일정한 예산까지 지원하면서 주민총회를 통해 주민들이 결정한 사안을 실행할 수 있게 도왔다.
한편 행정 인접공간에서는 위원회제도와 민간위탁제도, 시민참여제도들의 범위를 확장하고 실효성을 강화하는 노력들이 계속되었다. 이 정점에 서울혁신국의 신설에 이어서 서울민주주의위원회라는 합의제 행정기구의 구성과 온라인 ‘민주주의서울’, 오프라인 ‘서울시민회의’ 운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존의 협치예산등을 통합하여 ‘5%시민숙의예산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시민들과 함께 결정한 시정사업들을 실행할 수 있는 재정적 뒷받침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협치와 혁신은 구현방법이나 중심으로 여기는 대목은 선출직 시장의 관점이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만, 향후 지방정부에서 협치와 혁신이 행정계획수립과 시행에서 중요한 준거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는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협치와 혁신의 밑바탕에 있는 민주주의(풀뿌리 민주주의나 결사체 민주주의, 또는 지역에서의 숙의민주주의)를 심화시키려는 지향이나, ‘시민과 함께 하는 행정’이라는 지향 말이다. 앞으로 지방정부의 과제는 어떤 방향과 방법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포괄하는 ‘협치와 혁신’의 길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을 포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물론 2020년대에 새롭게 제시되고 있는 ‘도시전환’이라는 새로운 화두와 함께.
2. 우려되는 ‘협치와 혁신’의 역진현상
그런데 지난 4.7 보궐선거로 당선된 신임 오세훈 시장이 ‘협치와 혁신’의 방법론적 측면이 아닌 원칙 자체를 훼손할 수도 있는 정책과 발언들을 쏟아내고 일부 미디어들이 이를 재생산하면서 우려의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시장은 기존의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극복해나가는 방향을 잡는 것이 정상일텐데, 실제 행보는 강점을 제거하고 약점을 키우는 과정으로 나갔다.
오세훈 시장이 오히려 키우겠다고 했던 청년정책을 먼저 살펴보자. 오세훈 시장은 청년들의 당사자성을 최대한 살리기위해 민선 7기에서 시장 직속으로 구성했던 ‘청년청’을 해체하는 대신에 ’미래청년기획단‘형식으로 급을 높여 확대하고 개방직을 유지했다. 그런데 외형적 확대와 달리 청년들의 참여라는 당초의 취지를 더 살리지는 못하고 공무원 조직확대로 귀결되지 않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2030세대 정책을 발굴한다면서 오세훈 시장이 제안했던 '청년 정책배틀'이라는 이벤트를 청년참여정책이라고 부르는 것은 넌센스다. 가장 복잡한 사안인 청년정책의 결정을 이벤트 경쟁게임수준으로 사고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참여와 숙의, 협치‘라고 개념의 부재를 보여주는 사례다. 참여에 의한 정책형성을 ’공론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경쟁의 장‘에서 한다는 것이다.
둘째, 지난 6월, 오세훈 시장이 취임한 뒤 첫 조직개편에서 민간인이 참여하는 합의제 행정기구 실험이었던 ’민주주의위원회‘가 3년만에 폐지되고, 서울혁신기획관 기능까지를 통합한 전통적인 공무원 체제인 ’시민협력국(시민참여과, 시민숙의예산과,지역공동체과, 사회협력과, 갈등관리협치과) ‘으로 후퇴한다. 물론 조직형식과 구성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개편은 능동적으로 참여의 시정을 더 확대하기 위한 보폭으로 보이는 흔적은 없는 반면, 기존 혁신과 협치제도를 모두 없앨 수는 없으니, 소극적으로 기존 합의제 기구를 일단 공무원 조직으로 축소개편하는 수순으로 평가된다. 여기서도 역시 오세훈 시정이 생각하는 대안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다른 방식의 대안으로 명시적으로 방향전환한 대목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도시재생이 ‘보존’을 지우고 ‘개발’로 급전환한 대목이다. 오세훈 시장은 도시 재생 정책을 추진하던 도시재생실을 균형발전본부로 흡수, 통합하도록 했다. 산하 부서들도 ‘재생’ 이름 떼고 균형발전정책과, 도심권사업과, 주거혁신과로 변경했다.
셋째로, 기존의 시민사회위탁을 대폭 조정하는 의지를 밝힌 대목이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9월 13일, '민간위탁·민간보조 관련 서울시 바로세우기-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이름의 브리핑에서 기존 민간위탁사업을 정면에서 비판했다. 그는 “서울시의 곳간이 시민단체 전용 ATM(현금인출기)으로 전락했다”며 “시민 혈세를 내 주머니 쌈짓돈처럼 생각하고 시민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사익을 쫓는 행태를 청산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마을 공동체나 NPO지원센터 등이 포함되었다.
특히 위탁주체를 변경해야 할 마을공동체사업이 표적이 되고 있는데, 센터위탁을 일단 1년으로 줄이면서 민간위탁으로 유지할지, 2023년부터 시나 공공기관 직영 등으로 바꿀지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오세훈 시장은 “마을 공동체 사업의 인건비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면서 인건비 과잉계상을 문제시 삼기도 했다.
마을공동체 사업에 대한 비판에서, 주민참여나 협치 몰이해의 치명적인 단점들이 줄줄이 드러난다. 공동체 만들기 사업은 문자 그대로 사람들이 움직여서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형성해주는 사업이다. 콘크리트 건물세우고, 도로까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사람이 움직이는 일이 거의 대부분인 사업에서 인건비가 ‘절반씩이나 되는 것이 비정상’인 것이 아니라, ‘절반 밖에 안되는 것’이 비정상 아닌가? 여전히 우리사회는 돌봄노동도 그렇지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동 역시 그저 자원봉사나 과외활동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 때문에 기존에도 마을공동체 활동에 대해 극히 빈약한 인건비만 지원한다고 비판이 많았던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도대체 공동체 활동에 보상을 해주는 ‘참여소득’같은 이야기는 아예 꺼내볼 수도 없게 된다.
또 하나는 시민사회의 지원을 마치 ‘시혜적 지원’인것처럼 포장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수 많은 위탁기관등을 통해 서울시가 ‘지원’한 것은 엄격히 보면 ‘사업수행계약’이지 ‘지원’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어차피 서울시 공무원 조직이 직접 할 사업이 아니라면, 서울시는 위탁이든 외주든, 계약이든 외부 조직과 일을 추진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 대부분은 ‘수익을 추구하는 사적기업’이거나, 아니면 교수등 이른바 ‘일부 엘리트 전문가’이었다. 오세훈 시장의 표현처럼, 매년 1천억씩 시민사회가 위탁을 받았다면 전체 서울시 예산 20~40조 가운데 나머지 대부분은 기업이 수주를 했을 것이다. 똑 같은 논리라면 지금 오세훈 시장을 포함해서 서울시는 매년 1천억을 시민사회에 퍼주고 있는 동시에, 매년 그 200배쯤 되는 20조 이상을 사기업들에게 퍼준다고 말해야 할까?
그러면 반문해봐야 한다. ‘사적기업’이 하면 사업이고 ‘시민단체나 지역공동체가 하면 지원’인가? 이는 전형적으로 한 사회의 구성을 ‘국가’와 ‘시장’만 존재하고 ‘시민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구식 발상의 사례다. 또 있다. 굳이 공무원이 하면 될 일을 ‘민간’에 맡겨서 인건비를 낭비했다고 보는 관점이다. 또는 교수집단과 같은 ‘엘리트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 시민활동가’에게 함부로 비용을 주고 맡겼다는 것이다. 이 역시 매우 관료적이거나 엘리트주의적인 위험한 발상이다. 어떤 이는 “특정단체 소속이 아닌 관련 분야를 전공한 전문가나 다양한 분야에서 두루 활동한 범시민활동가 위주의 선발이 필요”하다고 대안을 말한다. 그러나 ‘범시민활동가’라는 것이 어디 있기는 한가? 이제 선진국 반열에 올라온 한국사회가 아직도 조잡한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3. 더 발전적인 ‘협치와 혁신’을 기대한다.
서울시의 협치와 혁신 사례를 여타 지방정부들에서 대안적 정책으로 다양하게 벤치마크했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도 이번이 임기 1년의 제한성뿐만 아니라, 제도와 사업이 이미 매우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쉽게 모두 폐기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25개 자치구는 기존 정책기조를 당분간 유지하고 있다. 오세훈 시장도 청년수당처럼 이미 시민들의 확고한 지지가 있는 정책은 그대로 가지고 갈 것이다.
물론 과거 서울시의 협치와 혁신정책이 모두 잘 되기만 했는가? 그런 것은 아니다. 서울시가 시도한 다양한 시민참여와 협치 제도들은 그 다양성과 활발함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각 부서의 외곽에 조직된 단속적인 자문기구나 의견 청취공간의 근본적인 제약을 벗어나지는 못했던 대목도 많다. 그 결과 ‘행정 중심 협치’라는 비판의견이 시민사회에서 있었다.
많은 위원회제도를 통해 심의 과정을 두었지만, 기본적으로 실국의 벽을 넘는 시민의견 수렴이나 정책화 등에는 제약이 있었다는 비판도 있었다. 참여형 예산과 협치형 예산편성(심의 의결은 의회) 제도를 두고 있었지만 여전히 규모도 많지 않고, 대부분 단년도 공모사업에 그치고 있어 시민 체감도는 기대만큼 높지 않다는 비판 역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지금 서울시의 방향은 이런 비판을 뛰어넘는 과정이라기 보다는, 그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명백히 후퇴다. 이제 기존 행정조직이나 소수 전문가 집단만으로는 서울시민이 직면한 사회적 과제들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1천만 서울시민 속에서 ‘더 많은 힘, 더 많은 지혜, 더 다양한 이해관계 집단의 연대’가 보태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과정이 없다면, 미래 서울시정은 지방정부가 따라 배워야 할 모범이 아니라, 가장 후진적인 모습으로 뒤쳐질 수도 있다. 특히 지금처럼 코로나19 등으로 시민의 삶이 어려울때에는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들의 방식대로 문제를 풀도록 도와주는 것이 절실하다.
* 이 글은 희망제작소가 주최한 긴급 좌담 "서울시 민관협치 이대로 좋은가"에서 발표한 토론문을 다듬은 것임을 밝힙니다.
‘협치와 혁신’은 지난 2010년대 서울시 시정(민선 5,6,7기)을 이끌어 왔던 핵심철학이었고, 행정의 원칙이기도 했다. 서울시정은 그 시기에 일관되게 ‘시민의 참여’에서 시작해서 시민의 참여로 끝났다. ‘시민이 시장이다’라는 원칙이나 ‘현장에 답이 있다’는 원칙아래 청책, 현장 시장실, 각종 위원회제도 운영 등 다양한 정책들을 시도했다.
이는 박원순이라는 특정 인물과 별도로 한국의 지방자치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는 ‘주민참여, 주민이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행정’이라고 하는 그간 우리 지방정부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하거나 형식적으로만 취급되었던 원칙을 전면적으로 구현하려는 첫 시도였기 때문이다. 서울시 시정의 수 많은 사례들이 다른 지방정부들로 확산되고 응용되었던 것도 바로 지방정부가 원래 추구하려던 철학과 원칙이 구현된 경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민생활의 인접공간에서는 마을공동체 운동, 청년운동, 사회적경제운동, 에너지자립마을, 도시재생 운동 등의 공동체 기반 주민참여가 활성화되었다. 그 정점에 주민자치회 전환과 운영이 있다. 주민자치회는 과거처럼 단순히 426개 동에서 주민협의모임을 넘어 일정한 예산까지 지원하면서 주민총회를 통해 주민들이 결정한 사안을 실행할 수 있게 도왔다.
한편 행정 인접공간에서는 위원회제도와 민간위탁제도, 시민참여제도들의 범위를 확장하고 실효성을 강화하는 노력들이 계속되었다. 이 정점에 서울혁신국의 신설에 이어서 서울민주주의위원회라는 합의제 행정기구의 구성과 온라인 ‘민주주의서울’, 오프라인 ‘서울시민회의’ 운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존의 협치예산등을 통합하여 ‘5%시민숙의예산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시민들과 함께 결정한 시정사업들을 실행할 수 있는 재정적 뒷받침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협치와 혁신은 구현방법이나 중심으로 여기는 대목은 선출직 시장의 관점이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만, 향후 지방정부에서 협치와 혁신이 행정계획수립과 시행에서 중요한 준거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는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협치와 혁신의 밑바탕에 있는 민주주의(풀뿌리 민주주의나 결사체 민주주의, 또는 지역에서의 숙의민주주의)를 심화시키려는 지향이나, ‘시민과 함께 하는 행정’이라는 지향 말이다. 앞으로 지방정부의 과제는 어떤 방향과 방법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포괄하는 ‘협치와 혁신’의 길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을 포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물론 2020년대에 새롭게 제시되고 있는 ‘도시전환’이라는 새로운 화두와 함께.
2. 우려되는 ‘협치와 혁신’의 역진현상
그런데 지난 4.7 보궐선거로 당선된 신임 오세훈 시장이 ‘협치와 혁신’의 방법론적 측면이 아닌 원칙 자체를 훼손할 수도 있는 정책과 발언들을 쏟아내고 일부 미디어들이 이를 재생산하면서 우려의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시장은 기존의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극복해나가는 방향을 잡는 것이 정상일텐데, 실제 행보는 강점을 제거하고 약점을 키우는 과정으로 나갔다.
오세훈 시장이 오히려 키우겠다고 했던 청년정책을 먼저 살펴보자. 오세훈 시장은 청년들의 당사자성을 최대한 살리기위해 민선 7기에서 시장 직속으로 구성했던 ‘청년청’을 해체하는 대신에 ’미래청년기획단‘형식으로 급을 높여 확대하고 개방직을 유지했다. 그런데 외형적 확대와 달리 청년들의 참여라는 당초의 취지를 더 살리지는 못하고 공무원 조직확대로 귀결되지 않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2030세대 정책을 발굴한다면서 오세훈 시장이 제안했던 '청년 정책배틀'이라는 이벤트를 청년참여정책이라고 부르는 것은 넌센스다. 가장 복잡한 사안인 청년정책의 결정을 이벤트 경쟁게임수준으로 사고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참여와 숙의, 협치‘라고 개념의 부재를 보여주는 사례다. 참여에 의한 정책형성을 ’공론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경쟁의 장‘에서 한다는 것이다.
둘째, 지난 6월, 오세훈 시장이 취임한 뒤 첫 조직개편에서 민간인이 참여하는 합의제 행정기구 실험이었던 ’민주주의위원회‘가 3년만에 폐지되고, 서울혁신기획관 기능까지를 통합한 전통적인 공무원 체제인 ’시민협력국(시민참여과, 시민숙의예산과,지역공동체과, 사회협력과, 갈등관리협치과) ‘으로 후퇴한다. 물론 조직형식과 구성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개편은 능동적으로 참여의 시정을 더 확대하기 위한 보폭으로 보이는 흔적은 없는 반면, 기존 혁신과 협치제도를 모두 없앨 수는 없으니, 소극적으로 기존 합의제 기구를 일단 공무원 조직으로 축소개편하는 수순으로 평가된다. 여기서도 역시 오세훈 시정이 생각하는 대안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다른 방식의 대안으로 명시적으로 방향전환한 대목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도시재생이 ‘보존’을 지우고 ‘개발’로 급전환한 대목이다. 오세훈 시장은 도시 재생 정책을 추진하던 도시재생실을 균형발전본부로 흡수, 통합하도록 했다. 산하 부서들도 ‘재생’ 이름 떼고 균형발전정책과, 도심권사업과, 주거혁신과로 변경했다.
셋째로, 기존의 시민사회위탁을 대폭 조정하는 의지를 밝힌 대목이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9월 13일, '민간위탁·민간보조 관련 서울시 바로세우기-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이름의 브리핑에서 기존 민간위탁사업을 정면에서 비판했다. 그는 “서울시의 곳간이 시민단체 전용 ATM(현금인출기)으로 전락했다”며 “시민 혈세를 내 주머니 쌈짓돈처럼 생각하고 시민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사익을 쫓는 행태를 청산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마을 공동체나 NPO지원센터 등이 포함되었다.
특히 위탁주체를 변경해야 할 마을공동체사업이 표적이 되고 있는데, 센터위탁을 일단 1년으로 줄이면서 민간위탁으로 유지할지, 2023년부터 시나 공공기관 직영 등으로 바꿀지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오세훈 시장은 “마을 공동체 사업의 인건비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면서 인건비 과잉계상을 문제시 삼기도 했다.
마을공동체 사업에 대한 비판에서, 주민참여나 협치 몰이해의 치명적인 단점들이 줄줄이 드러난다. 공동체 만들기 사업은 문자 그대로 사람들이 움직여서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형성해주는 사업이다. 콘크리트 건물세우고, 도로까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사람이 움직이는 일이 거의 대부분인 사업에서 인건비가 ‘절반씩이나 되는 것이 비정상’인 것이 아니라, ‘절반 밖에 안되는 것’이 비정상 아닌가? 여전히 우리사회는 돌봄노동도 그렇지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동 역시 그저 자원봉사나 과외활동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 때문에 기존에도 마을공동체 활동에 대해 극히 빈약한 인건비만 지원한다고 비판이 많았던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도대체 공동체 활동에 보상을 해주는 ‘참여소득’같은 이야기는 아예 꺼내볼 수도 없게 된다.
또 하나는 시민사회의 지원을 마치 ‘시혜적 지원’인것처럼 포장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수 많은 위탁기관등을 통해 서울시가 ‘지원’한 것은 엄격히 보면 ‘사업수행계약’이지 ‘지원’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어차피 서울시 공무원 조직이 직접 할 사업이 아니라면, 서울시는 위탁이든 외주든, 계약이든 외부 조직과 일을 추진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 대부분은 ‘수익을 추구하는 사적기업’이거나, 아니면 교수등 이른바 ‘일부 엘리트 전문가’이었다. 오세훈 시장의 표현처럼, 매년 1천억씩 시민사회가 위탁을 받았다면 전체 서울시 예산 20~40조 가운데 나머지 대부분은 기업이 수주를 했을 것이다. 똑 같은 논리라면 지금 오세훈 시장을 포함해서 서울시는 매년 1천억을 시민사회에 퍼주고 있는 동시에, 매년 그 200배쯤 되는 20조 이상을 사기업들에게 퍼준다고 말해야 할까?
그러면 반문해봐야 한다. ‘사적기업’이 하면 사업이고 ‘시민단체나 지역공동체가 하면 지원’인가? 이는 전형적으로 한 사회의 구성을 ‘국가’와 ‘시장’만 존재하고 ‘시민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구식 발상의 사례다. 또 있다. 굳이 공무원이 하면 될 일을 ‘민간’에 맡겨서 인건비를 낭비했다고 보는 관점이다. 또는 교수집단과 같은 ‘엘리트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 시민활동가’에게 함부로 비용을 주고 맡겼다는 것이다. 이 역시 매우 관료적이거나 엘리트주의적인 위험한 발상이다. 어떤 이는 “특정단체 소속이 아닌 관련 분야를 전공한 전문가나 다양한 분야에서 두루 활동한 범시민활동가 위주의 선발이 필요”하다고 대안을 말한다. 그러나 ‘범시민활동가’라는 것이 어디 있기는 한가? 이제 선진국 반열에 올라온 한국사회가 아직도 조잡한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3. 더 발전적인 ‘협치와 혁신’을 기대한다.
서울시의 협치와 혁신 사례를 여타 지방정부들에서 대안적 정책으로 다양하게 벤치마크했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도 이번이 임기 1년의 제한성뿐만 아니라, 제도와 사업이 이미 매우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쉽게 모두 폐기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25개 자치구는 기존 정책기조를 당분간 유지하고 있다. 오세훈 시장도 청년수당처럼 이미 시민들의 확고한 지지가 있는 정책은 그대로 가지고 갈 것이다.
물론 과거 서울시의 협치와 혁신정책이 모두 잘 되기만 했는가? 그런 것은 아니다. 서울시가 시도한 다양한 시민참여와 협치 제도들은 그 다양성과 활발함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각 부서의 외곽에 조직된 단속적인 자문기구나 의견 청취공간의 근본적인 제약을 벗어나지는 못했던 대목도 많다. 그 결과 ‘행정 중심 협치’라는 비판의견이 시민사회에서 있었다.
많은 위원회제도를 통해 심의 과정을 두었지만, 기본적으로 실국의 벽을 넘는 시민의견 수렴이나 정책화 등에는 제약이 있었다는 비판도 있었다. 참여형 예산과 협치형 예산편성(심의 의결은 의회) 제도를 두고 있었지만 여전히 규모도 많지 않고, 대부분 단년도 공모사업에 그치고 있어 시민 체감도는 기대만큼 높지 않다는 비판 역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지금 서울시의 방향은 이런 비판을 뛰어넘는 과정이라기 보다는, 그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명백히 후퇴다. 이제 기존 행정조직이나 소수 전문가 집단만으로는 서울시민이 직면한 사회적 과제들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1천만 서울시민 속에서 ‘더 많은 힘, 더 많은 지혜, 더 다양한 이해관계 집단의 연대’가 보태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과정이 없다면, 미래 서울시정은 지방정부가 따라 배워야 할 모범이 아니라, 가장 후진적인 모습으로 뒤쳐질 수도 있다. 특히 지금처럼 코로나19 등으로 시민의 삶이 어려울때에는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들의 방식대로 문제를 풀도록 도와주는 것이 절실하다.
* 이 글은 희망제작소가 주최한 긴급 좌담 "서울시 민관협치 이대로 좋은가"에서 발표한 토론문을 다듬은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