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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응시] 이번엔 이뤄야 할 ‘사학법 시즌 2’
- 입력 2021.08.31 10:52 조회 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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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호철 정의정책연구소 이사장,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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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대통령으로서 무능 그 자체였다. 구조작업을 방치한 세월호 참사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그가 항상 무능했던 것은 아니다. 불행하게도, 그는 야당지도자로서는 너무 ‘유능’했다. 특히 야당 시절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퇴행적 정책들을 저지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던 현 집권세력보다 백배 ‘유능’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노 대통령 탄핵을 시도한 역풍으로 초토화된 한나라당을 천막당사로 옮기는 뼈를 깎는 변신으로 살려냈고, 소수의석을 가지고도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꼭 중요한 개혁법안들을 줄줄이 좌초시켜버렸다. 구체적으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수인 152석, 민주노동당이 10석, 새천년민주당이 9석 등 진보개혁진영이 170석 이상을 차지하고 한나라당은 121석밖에 되지 않았지만,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던 국가보안법(보안법) 폐지를 저지했고 그나마 어렵게 통과시킨 사립학교법도 결국 투쟁을 통해 무력화시켰다.
유능이란 상대적인 것이어서, 박근혜가 야당대표로 ‘유능’했다는 것은 집권 개혁세력이 ‘무능’했다는 이야기다. 진보언론들 나아가 열린우리당의 정책연구소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노무현 정부가 170석 이상의 진보개혁진영 의석을 가지고도 보안법 폐지 등 야심차게 추진한 4대 개혁법안을 2004년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한 것은 정부여당의 정치력과 전략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특히 진보개혁진영이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는 등 보안법 폐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해찬 총리가 국회대정부질문에서 한나라당을 ‘차떼기당’이라고 공격하는 ‘이적행위’를 저질렀다. 울고 싶은데 빰 맞은 한나라당은 ‘이게 웬 떡이냐’ 하고 국회를 보이콧했고 정부여당이 예산안 통과 등 국정 정상화를 위해 할 수 없이 보안법 폐지 등을 포기해야 했다. 역사적 과제인 보안법 폐지를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버리고 말았다.
사립학교법도 마찬가지다. 열린우리당은 그 다음해 사립학교 재단 이사회와 감사에 의무적으로 외부인사를 포함시키고 이사장의 학교장 겸임을 금지하는 한편 예산과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어렵게 통과시켰다. 그러나 영남대학 소유주인 박근혜가 사립학교들과 기독교계, 기독교 관련사학들과 함께 “사립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말라”고 장외투쟁을 벌리면서 노무현 정부는 이에 굴복해 개혁적 요소를 대폭 삭제한 재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했다.
다 지나간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국내외 언론단체들과 참여연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저해할 것으로 우려되는 언론중재법을 단독처리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묻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국회 교육상임위에서 교육개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립학교법 개정안도 단독 통과시켰다. 개정 내용은 사립학교들이 거액을 받고 교원을 임용하는 교직매매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사립교원을 임용할 때 시·도교육청의 필기시험을 반드시 거치게 하고, 비리 사학의 경우 범죄혐의가 인정되는 설립자·경영자·학교장에 대한 교육청의 고발을 의무화하는 한편 취임승인 취소 임원의 임원자격 제한 연한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고, 임원과 친족관계인 교직원을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것 등이다. 한마디로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려는 개악법인 언론중재법과 달리, 사립학교법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사학비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제대로 된 개혁법안이다.
문제는 15년 전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와 관련 사립학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구체적으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과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사학법인미션네트워크는 최근 “한국교회는 사립학교의 인사권과 자율성을 제한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반대한다”며 “ ‘사립학교 교원임용의 교육감 위탁 강제’라는 위헌적 독소조항의 완전 철폐”를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이들은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이단의 침투를 막지 못 한다”는 기이한 논리를 내세워 법 제정을 강행할 경우 오는 대통령선거와 교육감선거,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운동을 벌리고 헌법소원 등 모든 합법적 수단을 동원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한마디로 ‘사립학교법 개혁 시즌 2’가 시작된 것이다. 이번에도 15년 전처럼, 그리고 최근 껍데기만 남긴 채 통과시킨 중대재해처벌법처럼 보수세력의 압박에 굴복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다. 이번에는 정신을 바짝 차려 전략과 정치력 부재로 실패한 ‘사립학교법 개혁 시즌 1’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를 빈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