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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집값 폭등 시대, 주거안심공화국

: 주거권을 위한 ‘탈상품적 자산화’의 기획

집값 폭등 시대, 주거안심공화국
         : 주거권을 위한 ‘탈상품적 자산화’의 기획

 

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



1. 들어가며 – 주거문제란 무엇인가?

  모두가 부동산이 문제라고 한다.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쪽방에 몸을 누이는 1인가구나, 월세 걱정과 전세난에 시달리는 가족이나, 세금폭탄이라고 아우성을 치는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원하는 해법은 물론 저마다 다르다. ‘세금으로 투기 근절, 폭탄공급, 균형발전-수요분산, 1가구1주택 원칙 법제화, 중산층용 임대주택 공급, 규제강화/완화로 다주택자 압박/유인하여 매물 확보, 규제 완화하고 시장에 맡겨 재건축재개발 촉진, 이중 몇몇의 병행’이 필요하다고 저마다 이야기한다.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인식에 따라 해법이야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철학적 바탕없이 현상에만 대처하면, 해법들끼리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다주택자를 규제하면서 동시에 전월세 시장 안정을 꾀하는 것이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주세요’의 대표적인 예다. 집값을 잡기 위해 집 사기 어렵게 만드는 것도 그렇다. 애초 목적을 생각하면 주객이 전도되었다. 그렇다고 ‘빚내서 집 사라’고만 하는 전략 역시 공공정책의 해법은 아니다. 집값 상승 부채질이나 가계부채의 수위를 생각하면 위험하고, 결국 다주택자의 수중에 집이 들어가는 점(2018년 이규희 의원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3~16년 사이 서울 신규주택의 77.6%는 유주택자에게 돌아갔으며, 과거 자가소유 진흥을 위해 팔려나간 영국의 사회주택 중 일부는 지금 보면 다주택자의 수중에 들어갔다.)을 돌이켜보면 음흉하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 위험하고 음흉했다면, 이번 정부의 ‘세금으로 다주택자가 집을 내놓게 하겠다’는 방식은 무책임하고 자가당착적이었다. 임대료 규제가 없으면 조세를 세입자에게 전가하며 다주택자들이 ‘버티기’에 들어가는 것도 문제겠지만, 내놓는다 해도 대출규제가 강력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수요자는 그 집을 살 돈이 없다! 설령 실수요자가 사도 문제인 것이, 현 세입자는 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전월세 시장이 불안정해진다고 걱정하면 앞뒤가 안 맞는다. 비록 당시엔 불과 2년 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어 계약갱신청구권이 (1회나마) 전면 도입되는 상황이 올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고는 해도, 기존 보유주택을 투명하게 등록하게 하는 선이 아니라 ‘신규 매집과 이후 매각’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등록임대주택의 물량을 확보하려 한 것도 결과적으로는 제 발등을 찍은 경우다.      
  이른바 복지국가들의 자가점유율을 보면 대체로 55% 언저리로, 우리와 엇비슷하거나 심지어 낮기도 하다. 이는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이 많아서 복지국가가 아니라, 세입자도 마음 편히 살아서 복지국가”라는 방증이다. 주로 단일모델(3절에서 설명)로 분류되는 이런 나라들은 소유와 임대, 그리고 임대부문 내에서도 영리와 비영리부문(이하 일반적인 비영리 부문 외에도 사회적경제나 제한영리 부문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즉 시장과 공공(사회)주택 사이의 격차가 크지 않다. 격차가 크지 않으니, 주거사다리가 필요 없다. 투기에 동참하고 싶어서 까지는 아니어도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나만 뒤처지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함 때문에 쫓기듯이 사다리에 몰릴 필요가 없어지면, 여건이 될 때의 ‘내집마련’도 오히려 쉬워진다.
  사다리가 짧다고 늘리는 것은 임시방편이다. 문제는 격차다. 우리가 할 일은 격차를 해소하는(=주거중립성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는 세율이나 공공주택의 물량과 같은 수치만을 정책목표로 삼아서는 이룰 수 없다. ‘어떤 성격의 제도와 정책을 국가와 사회가 구축하고 운영할 것인가’하는 ‘주거체제론적 관점’이 필요하다. 정의당이 ‘잔여복지와 각자도생의 주거체제’를 넘어, 보편적 대중을 위한 새로운 ‘주거안심체제’를 선도하길 바란다. 


2. 현재 문제 진단

  산업화-도시화 이후 한국의 주거문제는 크게 3분야의 양극화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소유의 양극화다. 집 없는 사람이 늘어나고 가진 사람은 더 가지게 되었다. 주택이 ‘자산’이기도 한 사회에서 이는 자산 불평등의 재생산으로 이어진다. 둘째, 비록 자산의 격차는 생긴다 해도 비용이 감당할 만하고 원하는 기간 동안 주거안정을 누린다면 그나마 ‘거처’로서의 주택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겠으나, 주거비 부담도 양극화되었다. 주거비는 전반적으로 모든 계층에서 과거보다 늘었는데, 가난한 계층일수록 더 많이 늘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마지막으로, 주거비 부담이 늘어도 주거품질이 좋아진다면 그나마 수긍할 여지가 있겠으나, 주거품질도 양극화되었다.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는 줄어들고 있으나 이는 ‘주택’을 대상으로만 이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이고, ‘비주택’ 거주인구는 늘어났다. 특히 ‘지·옥·고’에 사는 1인가구가 2010년대 이후 폭증했다(최경호 외, 2018).
  최근의 문제는 가격의 폭등과 그 이면의 시장의 ‘분리’다. 가격폭등의 원인으론 공급 부족, 임대사업자 특혜, 유동성 과잉 등이 지목된다. 모두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제일 큰 문제는 유동성의 과잉과 시장의 분리라고 봐야 한다. 주택건설 및 인허가 실적이 과거에 비해 오히려 많다고는 하지만, 이번 정부 초기의 인허가 부족과, 적시적소 공급 여부에 대한 문제제기는 새겨 볼 필요가 있다. 1인가구의 증가 등 수요변화에 비해 공급이 부족했다는 지적들이 나오는 대목이다. 임대사업자 소유 물량이 폭증한 2018년 이후 집값 상승이 두드러진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그러나 전국적으로는 아파트, 수도권에서는 중저가 빌라 위주인 등록임대물량이, 전체의 가격앙등을 선도한다는 수도권 아파트 가격폭등의 주원인인지에 대해선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 
  유동성 과잉은 경제발전에 따라, 특히 양극화 및 저금리 기조에서는 필연적이며, 주식뿐만 아니라 가상화폐 등의 투자대상에 돈이 몰리게 된 주원인이다(가상화폐 시장에서 번 돈은 결국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부동산으로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한편, 당장 ‘실수요자’들은 대출규제로 집을 살 수 없다고 아우성인데, 수십 년을 저축해도 살 수 없어진 주택가격은 다른 편에서 계속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이는 각종 규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이들이 계속해서 주택가격을 떠받치고 있는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이러한 시장의 ‘분리’는 대중의 박탈감을 일으키고 사회통합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민주당의 위기’를 넘어 ‘대한민국의 위기’다. 
  정부의 정책기조는 전반적으로 시장주의적 관점 내에서 일부 규제를 통해 매매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중점을 뒀다. 대출규제 완화의 부작용을 우려하다 보니 구사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 제한적이었다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결국 ‘벼락 거지’의 상대적 박탈감을 정부는 ‘중저가 주택에 대한 접근성 개선’보다는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로 해소하려 했다는 지적 역시 가능하다. 그렇다면 투기에 악용되지 않으면서도 수요자의 접근성을 높일 대안이 필요하다(5절에서 다룰 환매조건부, 지분공유(적립),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등 다양한 대안적 공급 방식과 점유형태들이다.). 한편 세금 정책도 조세정의의 원칙에 입각해서 수립할 일이지, 가격조절 자체가 목적이 되면 역시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종부세와 양도세 강화, 토지초과이득세 재도입 등이 논의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세금 중심의 시장개입으로는 가격안정이나 자가율 증가에서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했으며, 조세전가로 임대료만 인상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 정부는 ‘1가구1주택’ 등 불가능한 목표에 대한 급진적 메시지를 내다가도, 시장이나 여론의 반응에 따라 기조를 뒤집는 경우가 반복되며( 종부세 강화에서 완화로, 공급충분론에서 대규모 공급론으로 선회한 사례 등) 공공정책의 신뢰도에 큰 손상을 입었다. 오코너는 일찍이 현대자본주의 국가가 처한 딜레마를 ‘축적과 정당화의 모순’(O’Conner, 1987)으로 파악했지만, 2020년 이후 정부는 축적의 위기(예컨대 미분양 사태)는 오지도 않았는데 정책기조를 급선회하며 정당화의 위기에 내몰린 모양새다.
  ‘개발이익환수’는 ‘모두의 장래희망이 건물주’인 세상에서 한물간 구호로 취급되기도 했다. 최근 대장동 사태로 인해 이 구호가 돌아오긴 했으나, 이 역시 시세차익이 발생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개발이익 사유화’와 본질적 차이는 없다. 이런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주장은 정치적 의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지역구에서 높은 투표율을 보이는 소(petit)자산가의 심기를 정의당의 지역구 예비출마자들을 포함, 정치인들이 거스르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건물주가 되면 아무도 임대료를 받지 못한다. 욕망을 추수/죄악시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욕망을 실현시켜드릴 순 없다’는 솔직하고 책임 있는 자세를 견지하는 동시에, 소선구제에 갇히지 않을 정치적 기획을 해야 한다. 


3. 주거체제 전환의 지향 

  1) 주거체제론
  주거체제(Housing Regime)에 대해 학계에서 통일된 정의는 없지만, 대체로 ‘각종 제도와 문화가 주택을 중심으로 형성한 중규모(meso -scale) 체계’라는 의미로 쓰인다(이하 주거체제론에 대한 설명은 최경호(2021a)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더 자세한 논의는 남원석(2014), 신진욱&이은지(2012), 이석희&김수현(2014) 등을 참고할 것). 할로우(Harloe)는 유럽국가들의 주거체제를 분석하여 대중모델, 잔여모델, 협동조합모델로 유형화했다. 여기서 대중 모델은, 주택이 가지는 재화의 특수성 때문에 보편복지의 차원까지는 구현하기 어렵지만, 최대 일부 중산층 정도까지의 ‘대중(mass)’은 포괄할 수 있다는 보편복지의 연장에서의 의미다. 
  훅스트라(Hoekstra)의 자유주의, 조합주의, 사회민주주의의 구분은 복지국가의 유형론에서 에스핑-앤더슨(Esping-Anderson)의 분류법을 주택에도 적용하여 유의미성을 보여준 사례다. 그에 따르면 주거체제의 성격은 <표1>처럼, ‘탈상품화 정도’, ‘계층화 정도’, ‘공공-시장-가구 혼합 요인’ 등 에스핑-엔더슨의 분석항목을 비롯하여, 비영리조직(NPO)의 역할, 규제의 성격, 주택정책의 일반 목적, 보조금의 수혜범위와 책정방식, 가격 결정 메커니즘, 주택의 배분원리, 주택공급체계에서 주체별 역할 등에 따라 규정된다. 공공주택 재고량이나 몇 가지 세금의 세율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표 1] 훅스트라(Hoekstra)의 복지국가 주택체제 유형 성격 비교 (최경호, 2021a를 수정, 보완)

 * 표가 제대로 업로드 되지 않으니, 해당 표 등을 자세히 보실 분은 첨부한 pdf 파일을 참조 바람.


  한편 비영리주택부문과 다른 부문과의 관계에 좀 더 주목한 흐름도 있다. 주거체제를 ‘사회주택시스템 vs 포괄적 주택시스템’(Donnison), ‘표적모델 vs 일반모델’(Andrews et al) 또는 이원모델 vs 단일모델의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흐름이다. 대체로 전자는 할로우의 잔여모델과, 후자는 대중모델과 유사하다(남원석, 2014). 그 중 케메니의 분류법에 의하면, 이원(Dual) 모델은 주로 영미권 국가들로서, 비영리부문이 시장부문(자가소유 포함)과 단절되어 서로 경쟁을 하지 않으며, 비영리부문은 주로 공공이 전담하고, 공공주택의 소수 빈곤가구에는 ‘사회적 낙인(social stigma)’이 찍히는 경향을 보인다. 당연히 자가선호 성향과 자가점유율도 높은 편이다. 단일(Unitary)모델은 비영리부문과 영리부문의 구분이 모호하여, 즉 시장영역과 비시장영역의 통합성이 커서 사회적 시장(social market)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으며, 자가점유율은 상대적으로 작고, 비영리부문의 공급주체가 공공 외에도 협동조합 등 다양하다. 비영리조직의 주택 공급, 광범위한 주거보조비, 시장과 비시장부문을 포괄하는 동일 기준의 임대료 체계로 공급자와 소비자 내부에서도 수평적, 수직적 형평성이 상당한 수준으로 구현되는 네덜란드나, 오스트리아 및 덴마크 등이 단일모델의 대표적인 사례이다(남원석 2011, 최경호 2020b). 

  2) 한국의 주거체제  
  한국의 경우 훅스트라의 분류에 대응할 만한 체제 성격을 도출하기엔, 비교 가능한 적절한 지표부터 먼저 정리해야 할 만큼 체제의 맥락이 다르다. 이와 달리 수요측면, 공급측면, 그리고 이 둘을 결합하여 국가론적 차원에서 파악한 초벌적 시도에 따르면, 한국 주거체제는 ‘발전국가 산업정책의 보조수단’에서 ‘시장주도 필터링’을 거쳐 ‘사회통합-분리의 기로’에 직면해 있다(최경호, 2021a). 점유측면에서는 전세를 중심으로 주거사다리가 일부 작동했던 국가주도 모델의 시기와, 1990년대 이후 전세가 ‘레버리지 투자자금’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강해지고 다주택자 소유 주택과 월세 가구의 비중을 늘리는 주거 미끄럼틀에 가까운 역할을 하는 시장주도 필터링을 거쳐(1995년에 30%에 달했던 전세는 2019년 15.1%로 반토막이 났고, 같은 기간 월세는 14.5%에서 23%로 늘었다. (인구주택 총조사 각 년도)). 최근에는 일부 세제와 대출규제가 강화되었으나 오히려 양극화와 불안정성은 증대한 과도기적 상황에 놓여 있다. 
  공급체계 측면에서는 과거 국가주도로 토지를 확보하고 공급자금융과 소비자금융이 미비하여 선분양과 다주택자의 매입에 의존하여 주택을 공급하던 모델이 1990년대를 경과하며 개발동맹(건설회사와 토지지분을 가진 조합원들의 동맹)으로 주도권이 넘어가게 되었다. 공급자금융과 소비자금융은 주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금융과 주택담보대출 등을 통해 제도화되었으며, 재건축재개발의 비중이 커졌다. 최근에는 대량생산-대량소비 방식을 벗어난 소량다품종 공급방식이 도시재생과 사회주택의 흐름 속에 시도되고, ‘사회적금융’ 등 장기저리 인내자본이 형성되기 시작했으나 아직 전체에서의 비중은 미미하다. 
  공공주택 재고량은 과거보다 상당히 늘었으나(약 170만호), 해당 분류에 포함되어서는 안 될 ‘10년 후 분양전환’([집중취재M] 10년 뒤 '내 집' 될 줄 알았는데‥쫓겨나는 판교 주민들, MBC 뉴스데스크 2021.11.12)  물량을 제외한 장기임대주택은 불과 92만호 수준이고 여전히 잔여주의적 관점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공급주체 중심으로 접근하여 목표 집단 내의 형평성이나 수요맞춤형 공급에는 한계를 보이며, 총량주의적 관점에서의 공급실적만 중시하여 운영단계의 공실률이나 유지관리, 입지의 적절성은 지속적인 지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공공주택의 정의를 공급자 중심의 관점인 ‘공공주체가 공급하는 주택’에서, 주택이 실현하는 공공성 중심의 관점인 ‘공공주택 임대료체계를 준수하는 주택’으로 바꾸어 수평적 대중복지체계로 전환하자는 제안도 있다(최경호 2021b). 

  3)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상의 평가를 바탕으로 한국 주거체제 전환, 내지는 진행의 방향에 대해 몇 가지 제시한다. 먼저 공급이나 세금 측면 모두 낙수(落水)효과를 추구하는 전략을 폐기하고 부상(浮上)효과를 추구해야 한다. 공급을 통해서 자가소유율이 늘어나고 규제를 통해서 고가 주택부터 저가주택까지 가격이 안정되길 기대하는 낙수효과는 현재까지 성공한 적이 드물다. 차라리 세수증대를 포기할지언정 임대료 규제를 도입하는 것이 실제 세입자에게 혜택이 가면서 (아래에서부터 물을 채우면서) 다주택보유의 유인을 줄이는 방법이다. 
  다음으로, 부상효과 추구의 연장선에서 ‘1가구1주택주의’와 같은 소유부문 우선 접근 전략을 폐기하고, 주택부문에도 ‘버스 전용차로’와 같은 것을 만드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는 당장은 길이 좁아진 듯 보여도 결국 자가용 운전자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모두가 자가용을 몰겠다고 나서면 자동차 가격도 비싸지고 교통체증은 끔찍한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차량원가공개’나 ‘차량세 인상’ 보다는 ‘대중교통이 편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나중에 개인이 차를 사거나 몰기에도 수월해진다. 

  “발전한 국가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가용을 사는 게 아니라 부자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나라다 
  País desarrollado no es donde pobre tiene auto. Es donde rico usa transporte público”. 

  - 보고타 시장 구스타보 페트로(Gustavo Petro)  

  이는 곧 주거(점유)중립성의 개념으로 연결된다. 현재의 정책들은 월세<전세<1주택자<다주택자의 부등호대로 유리한 구조다. 자산가치 상승의 편익을 누리는 것을 넘어, 금융지원 정책도 다주택자에게 유리하다(월세 집단의 주거보조비 보다 전셋집단에 대한 대출이자의 지원 정도가 더 크고, 자가마련시 가능한 대출규모(LTV 40%) 보다 다주택자가 전세를 끼고 살 때(갭투자) 집값 대비 전세보증금의 비중(주택가격의 80%)이 더 크다. 이런 상황을 지탱하는 것이 보증금의 80%(신혼부부는 90%)까지 지원해주는 전세자금대출이다. 문제는 다주택자 갭투자에 들어가는 8x8=64%의 대출 지원의 규모가, 자가 마련시 가능한 40%의 대출규모보다도 더 크다는 점이다. 심지어 1주택자의 대출금 40%는 소유자가 이자를 내는데, 다주택자의 64%에 대해서는 세입자가 이자를 내고 있다.). ‘짐이 많으면 택시, 평소엔 버스, 길이 막히면 지하철’을 그때그때 편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교통인프라와 이에 대한 투자의 중립성’을 추구하듯, 주거부문에서도 기울어진 운동장과 지원정책을 바로 잡고 ‘중립성’을 구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한 공급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의 공공분양, 분양전환임대, 민간 전세 모두 훗날의 토지가치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에 의존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토지의 자산으로서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 상황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구호만 외쳐도 문제다. 영속형 임대, 토지임대부, 환매조건부 등 토지공개념이 도입된 주택으로 투기를 차단하되(탈상품화), 수요자의 안정적 점유(넓은 의미의 자산화)가 가능한 탈시장적 자산화의 대안을 전면화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금융구조와 사회제도를 마련해야 한다(5, 6, 7절에서 다룬다).

  4) 기존 정의당 주장 평가
  이러한 관점에서 정의당의 기존 주장을 살펴보면, 먼저 체제의 구조를 바꾸려는 기획이 부재하고, 아이템별 급진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지적할 수 있다. 예컨대 민주당이 세율을 0.5% 인상하겠다면 정의당은 1% 인상하겠다, 민주당이 공공주택을 얼마 짓겠다고 하면 정의당은 그보다 더 짓겠다, 하는 식이다. 문제는 약간의 세율이나 주택 몇만 호의 차이가 아니라 국가의 역할, 공급구조의 체질개선인 점을 놓치고 있었다. 세금과 낙수효과에만 기대었던 모습은 최근 주거급여법 개정안 등을 제출하며 임대부문의 부상효과를 추구하는 등 달라진 면모를 보이고 있지만, 최근까지도 1가구1주택주의나 ‘상품으로서의 주택’의 원가 공개 등 소유부문 우선 전략이 두드러졌고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를 향한 전망이 부재했다. 
  도시계획(공간인지)적, 생애주기적 관점도 부족했다. 공공택지에는 100% 공공주택만 짓겠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공공이 수용한 토지가 특정 민간업체의 배불리기에 악용되는 것은 물론 문제가 있다. 그러나 공공택지라고 해도 전부 수용으로 확보하는 것은 아닐뿐더러, ‘도시계획’이 실현해야 할 공익이나 공공성을, ‘수용한 토지니까 공공주택’으로만 한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한 관점이다. 좋은 도시는 우선 물리적·사회적 측면에서 다양성이 구현되고 소셜믹스(계층혼합)로 소득수준은 물론 인종·정체성·연령·장애유무와 무관하게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도시다. 그래야 공동체도 건강해지고 편의점이나 병원 같은 편의시설과 기반시설도 다양하게 더 들어오며, 그 혜택은 공공주택 주민들도 누리기 때문이다. 적당한 시점 이후 자가를 사고 싶어질 때 그 동네를 떠나게만 하면 곤란하다거나, 점포주택이나 단독주택은 굳이 공공주택일 필요가 없다는 이유도 있다. 
  앞서 말했듯 복지국가는 자가소유자가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교통문제는 빈자도 자가용을 몰아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는 데도 집 없는 서민이 많은 까닭은 주택 소유가 편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심상정 후보 4호 공약 발표문 중 발췌)라는 말은 현상과 원인 진단의 내용이 동어반복이거니와, 모두가 자기 집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라는 점을 놓친 것이다. 주택보급률이 120%가 되어도 ‘모두가 자기집을 가지는 사회’는 불가능하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그 이유를 살펴본다. 


4. ‘미션 임파서블’: 1가구1주택과 세금

  주거복지가 잘 구현되었다는 국가들의 역사를 보면 약 60% 전후에서 자가소유가 더 늘지 않는다. 귀납적으로 보면, 경제력과 자가율은 오히려 대체로 반비례하는 편이다. 자가율이 90%가 넘는 나라들은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쿠바, 80%가 넘는 나라는 네팔, 러시아, 인도, 폴란드, 멕시코 등이다. 일본이나 싱가포르 정도가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이 현상의 원인이나 연역적 이유를 분석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사회가 일군 부의 가치가 커지고, 그 가치가 토지에 반영되기에 토지는 비싸지는데, 소득분배는 토지의 필요도에 비례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정도의 직관적 추론은 가능하다. 이를 연장하여, 비용곡선과 구매력 곡선의 불일치, 토지의 불균등성에 따른 입지 선호를 반영하면 3개의 부담불가능한 구간이 생긴다는 가설이 있다(최경호 2020a). 
  실제로 주택의 공급비용 곡선은 ([그림1]의 주황색)은 아래로 볼록하고, 소비자의 구매력 곡선(파란색)은 양극단이 기울기가 가파른 S자형 곡선에 가깝다. 거칠게나마 비용곡선과 구매력곡선 사이의 관계를 처음 들여다본 이 가설에 따르면, 비용곡선이 충분히 아래에 놓이면 중간층의 부담불가 구간은 없어지고 자가율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인구의 실제 공간분포를 감안하면(그림의 화살표에 따라 파란선이 오른쪽으로 접히면), 산업입지에 따라 도심에 가까이 살아야 하는 저소득층의 경우엔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6411번 버스는 이들이 살 수 있는 집과 일터를 연결해주는 경우다). 부담불가 구간의 발생은 구조적으로 필연이다. 구매력 곡선 내에서의 이동은 개인의 노력으로 가능할지 모르나, 그 체제의 사회경제적 조건으로 한번 자리잡은 비용곡선과 구매력 곡선의 위치는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림 1] 주택비용 곡선과 구매력 곡선상의 실제 인구의 공간분포


  토지비용을 줄이거나 도심의 용적률을 높이는 것은 비용곡선의 기울기를 낮출 수는 있지만 완전한 해법이 되지 못한다. 토지가격이 0원이 되어도 공간상에서 특정 지점에 대한 선호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며, 용적률을 늘려 밀도를 높이는 해법도 재무적으로나 기후위기 대응 측면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수직이동 비용의 증가와 고층화의 한계이익 체감에 따라 소형주택을 공급하기 힘든 이유 등에 대해서는 최경호(2020a)의 시리즈의 3, 4, 5편을 참고할 것). 국토균형발전으로 수요를 분산하거나 주4일제 근무 등으로 교통비용을 줄이는 것도 상당한 수준의 해법이 될 수 있으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7절 참고).
  세금이나 기타 규제로 해결하는 것은 더욱 난망한 일이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먼저 ‘진정한 수혜자’의 편익은 오히려 늘어난다는 점이다. 혼잡통행료나 주행세를 부과하면 제일 혜택을 보는 집단은 ‘주행세쯤은 부담이 안 되는 계층’이다. ‘정의롭게’ 세금 얼마든지 내고, 더 넓어진 길을 마음껏 달리게 된다. 주행세를 인상하면 수혜집단의 규모는 작아질지 몰라도, 이들이 누리는 편익은 더 커진다. 길이 더 한산해지기 때문이다. 대출규제로 현금부자들만 집을 ‘줍줍’한다는 원망이 나오는 상황과 유사하다. 한편, 주택도시기금의 2019년 운용실적이 76조 원인데, 2021년 유망 기업의 공모주 청약에 이틀밤 사이 81조 원이 몰리는 세상이다. 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민간의 자금력은 더 커질 것이다. 혼잡통행료쯤은 무섭지 않은 집단의 힘은 계속 커지고 있는데, 시장 내부에서만 공급과 배분을 다루면서 이를 세금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다. 차라리 임대료를 통제해서 길목을 잡는 것이 낫다. 조세전가의 우려가 없고, 팔지 않고 버틴다 해도 당장 세입자에게 혜택이 갈 수 있으며, 주택가격을 잡으려는 정책처럼 정책의 수혜자가 정책의 반대자로 돌아서는 일이 없다(누구든 자가를 소유하고 나면 가격이 오르게 되길 바란다. 따라서 가격을 낮추려는 정책은 성공하는 순간 그 수혜자를 반대자로 만드는 정책이다.). 
  둘째는 그래서, 임대료 규제가 세금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종부세 퇴행을 획책하는 작금의 시도는 막아야 하지만, 임대료 규제가 없다면 세금은 임대료에 전가되고, 주거보조비도 임대료로 빠져나간다. 다음 절에서 자세히 다룬다.


5. 대안의 출발점

  1) 시세차익에서 자유로운 장기상환 금융구조 구축 
  투기가 근절되어 반값이 된다 해도 여전히 집값은 웬만한 이들 연소득의 십수 배가 넘는다. 하지만 건설회사가 할부로 팔지 않는 이상, 누군가는 그 돈을 다 지불해야 산업이 돌아간다. 그리고 그 돈을 미래의 현금흐름으로 충당해야 한다. 원래 비싼데, 당장도 필요한 것이 집이니, 초기 비용을 유동화하여, 미래 수익과 연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제도가 미비했던 시절에는 ‘공급비용←선분양←전세←세입자’의 자금흐름이 ‘공급비용←공급자금융←소비자금융←소비자’로 연결되는 비용유동화의 모습이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과 모기지론(주택담보대출)이 각각 공급자금융과 소비자금융을 어느 정도 대체했지만, 이들 모두 시세차익에 의존하는 구조임엔 변함이 없다. 담보대출을 받아도 수십 년간 꾸준히 돈을 갚기보다는, 대개 매각을 통해 엑싯(exit, 청산)하여 돈을 갚고, 이를 상회하는 시세차익을 얻으려 한다. 은행 역시 대출자의 신용보다 향후 주택가격의 지속 상승을 더 기대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설령 시세차익이 아니라 성실한 노동으로 대출금을 상환하는 풍토가 정착한다 해도, ‘빚내서 집 사라’는 방식의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구조적으로 30%가량의 인구는 소외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LTV(Loan to Value: 주택담보대출 비율. 주택가격 대비 대출액 비중을 말한다.)나 DTI(Debt to Income: 총부채상환비율. 연소득 대비 대출 원리금 상환액의 비중을 말한다.) 규제를 완화할 때의 문제는, 주택가격 상승 부채질이나 가계부채 증가 외에도, 실제 수혜자가 매우 소수라는 점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안정된 직장인이 아닐 경우 대출을 꺼리기에 결국 비정규직이나 플랫폼 노동자 등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러니 유연화에 대한 동의 여부와는 별도로, 경제발전을 위해서 노동이 유연화되어야 한다며 동시에 ‘모두들 빚내서 자기 집 사라’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주택문제가 노동문제와 연계되는 대목이다.
  소비자금융으로서의 전세는 ‘전월세전환율이 시중이자율보다 높으니’ 월세로 전환하는 것이 당장의 운용수익 측면에서는 유리한 제도다. 그러나 임대인들이 전세를 선택하는 것은 (임차인이 전세를 통해 주거사다리를 오르라는 배려 때문이 아니라) 당장 목돈을 통해 다른 곳에 더 투자를 하거나, ‘갭’만 가지고도 이 집을 소유하기 위함이다. 훗날 얻는 시세차익이 월세로 얻는 운영수익보다 훨씬 클 것이라 예상하기에 작동하는 시스템이 전세인 것이다(그래서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기에 전세 임대인과 임차인의 ‘전세동맹’이 형성되고 임차인이 당장은 월세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거주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 임차인이 미래에 구매할 주택은 이미 다주택자의 손에 들어가게 된 것이며, 결과적으로 전세는 특정개인에게는 ‘주거사다리’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주거미끄럼틀’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점에서는 5년, 10년 후 분양하는 ‘분양전환’ 공공임대주택도 똑같은 시스템이다. 이렇게 보면, 운영수익도 합리적으로 추구하면서 리모델링과 ‘매력적인 임차인’ 유치를 통해 건물의 부가가치를 올리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매각차익을 가져가는 오피스투자가 차라리 더 건전하다고 하겠다.
  영구임대주택이나 사회주택은 다르다. 매각차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영구임대주택은 비용의 대부분을 정부가 책임지기에 저렴한 임대료 책정이 가능하다. 그런데 공공재정의 부담이 크니 가장 저소득층만 입주할 수 있게 하여 ‘잔여복지’의 상징이 되었고, 공기업은 공기업대로 이런 부문에 투입할 비용 마련을 위해 분양전환 임대주택을 계속 짓거나 다른 수익사업을 해야 한다는 교차보조론의 근거로 사용되는 문제가 있다. 토지지분이 없는 사회주택의 경우도 이후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없기에, 시세 80% 이하라는 임대료 조건 충족을 위해 공공이 토지와 건설비용에 대해 지원한다. 그러나 기존의 금융시스템은 2~3년 내 ‘엑싯’하는 분양사업의 패러다임에 젖어있다 보니, 제도 집행의 각론에서 사회주택과 맞지 않는 점이 곳곳에서 불거졌으며(십수 가지 사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두 가지만 소개하면, △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보증서를 발급해 주었으나, 시중 은행 담당자가 ‘토지지분이 없는 사업자에게는 한 번도 공사비 대출을 해 준적이 없다’며 대출 승인을 거부/유보한 경우, △ PF대출을 전액 상환하지 않으면 사업자의 자기자본 회수를 하지 못하게 하는 ‘분양사업’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임대수익으로만 상환하면 약 20년이 걸리는 사회주택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여, 첫 사업을 시작한 사업자가 추가 사업 확대를 할 수 없게 한 경우가 있다. 후자의 조건은 (2~3년 내 자기 자본을 회수하고 다음 사업을 또 시작할 수 있는 분양사업의) 영리사업자와 비교하며 ‘사회주택 사업자는 영세하고 무능력해서 사업 확대가 느리다’는 마타도어에 아직도 이용되고 있다.), 정부는 당장의 공급이 급해 공기업에 주로 의존한 것이 지난 4년간 사회주택이 활성화되지 못한 주원인이다. 
  이를 통해 얻는 교훈은, 공기업이 혼자 적자를 감내하며 다 하겠다거나, 시장에 맡기자는 것이 아니라, “장기임대수익으로 초기 비용을 충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주택도시기금 등의 공적, 사회적 금융의 본연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기비용의 유동화’를 그동안 다주택자가 해온 것이 민간임대고, 공기업이 적자를 감내하고 한 것이 공공임대이며, 사회주택은 비영리·사회적경제 조직이 하는 것이라면, 이제는 공급주체를 막론하고 부담가능한 임대료로도 지속가능한 장기임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금융구조를 새로 짜야 한다. 대장동의 교훈이기도 하거니와, 공공성은 ‘누가’ 공급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공급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주택도시기금 같은 공적, 사회적 기금의 운용 철학은 이제 시세차익을 전제로 하는 분양사업이 아니라 저렴한 장기임대사업을 위한 초기 비용 유동화의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공기업도 부채를 줄이고, 교차보조를 명목으로 수익사업을 할 필요가 없어지며, 무엇보다 공공주택에 대한 사회적 낙인 없이 다양한 공급주체가 서로 경쟁하면서 보편적인 대중에게 부담가능한 주택을 제공하는 한국식 ‘단일모델’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장기저리금융 덕분에 주택의 월세 임대료가 현재의 전세대출의 이자 수준이나 그 이하가 되면, 세입자들도 전세자금 대출을 받고 그 이자를 내느니 그냥 월세에 살아도 상관없게 된다. 전세보증금이 투기의 종자돈이 되는 일도 없어진다. 이렇게 임대가 소유에 비해, 월세가 전세에 비해 그다지 불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주거중립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주거안심사회를 만들기 위한 기본 원칙으로 삼을 만하다. 임대주택 몇 만호나 세금 몇 프로의 논의는 이에 비하면 부차적인 일이다. 
  ‘시세차익에서 자유로운 장기상환 금융구조’가 정착되면, 뒤에서 설명할 환매조건부나 토지임대부 및 지분적립형 주택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모두 단기 매각차익이 없으며 공급비용 환수에 상당 기간이 필요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런 금융구조에서는 자연스럽게 건물수명도 길어진다. 매각차익이나 분양수익이 아니라 운영수익으로 부채를 상환하려면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재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최대한 오래 써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의 방향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표 2] 주택금융 제도의 변천과 주거안심사회 및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비 방향

* 표가 제대로 업로드 되지 않으니, 해당 표 등을 자세히 보실 분은 첨부한 pdf 파일을 참조 바람.


  그린 리모델링이나 탈탄소 체계를 향한 전환 과정 역시 초기 비용을 장기간에 걸쳐 충당해야 하는 점에서 이런 금융구조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조기상환보다는 오히려 꾸준히 배당을 해주는 수익구조를 선호하는 재원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 연기금이나 각종 공제회의 역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공공재정은 차라리 연기금의 요구수익률과 임대주택사업의 수익률의 차이를 보전해주는 것이 효과적인 재정집행 방식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연기금의 요구수익률이 4%이고 주택사업의 수익률이 2%라면, 1조 원의 공공재정으로 주택을 바로 짓는 것이 아니라, 수익률 차이 2%를 보전해서 50조 원의 연기금을 동원하여 집을 짓는 것이다. 이때에도 주택의 임대료가 부담되는 계층을 위해서는 주거비 보조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부동산이 그렇게 문제라면, 600조 원에 달하는 정부예산 중에서 현재 2조 원 수준에 불과한 주거급여 예산을 10조 이상으로 확대하면 된다(세입자의 절반 정도인 400만 가구에게 월 10~40만원, 평균 25만원씩 지급할 경우 연 12조원이 소요).

  2) 공공주택 공급, 주거비 보조, 임대료 규제의 3단 회로
  입주자와 공급자 각각의 형평성을 위해서는 주거비 보조와 임대료 체계가 주택공급과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3단 회로가 작동해야 한다(그림2). 이는 임대부문의 중립성을 구현하는 것이며, 세금으로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수혜대상부터 바로 혜택을 보는 부상효과를 위해 주거보조비를 지급할 경우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3단 회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네덜란드에서의 실제 사례에 대한 새사연 이슈브리프(최경호 2020b)나 2020년 황순식 후보의 총선 공약을 참고할 것)
 

 [그림 2] 공공(사회)주택 공급, 주거비 보조, 임대료 규제의 3단 회로



  주택의 공급, 즉 현물보조만으로는 입주자 측면에서의 형평성을 달성하기 어렵다. 예컨대 주택공급에 호당 1억 원이 들고 예산이 10억인데 1백 명의 정책대상이 있다면 90명은 혜택을 받지 못하여 수평적 형평성에 위배된다. 같은 집에 같은 임대료인데 입주자의 형편이 다르다면 수직적 형평성에도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보완하는 것이 현금보조다. 액수를 조절하면 되니 한정된 예산으로도 모두에게 고루 지급할 수 있으며, 심지어 차등지급으로 소득에 따라 더 필요한 계층에게 더 지원할 수도 있다. 대개의 경우 현물보조보다 현금보조가 소비자의 효용도 높다. 문제는 임대료 규제가 없다면 주거보조비 지급이 임대료 인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자동 쪽방촌의 임대료는 주거비지원액과 천원 단위까지 맞춰 같이 오른다. 위수지역에서는 군인월급에 따라 PC방과 모텔 요금이 따라 오르며, 교복비를 지원했더니 교복값이 오른 사례도 있다. 현 상황에서 기본소득을 지급한들, 임대료 인상을 막지 못하면 결국 임대인의 호주머니로 들어갈 것이다. 
  물론 임대료를 통제하면 공급이 위축되고 품질이 저하되는 문제가 있다. 스웨덴의 경제학자 린드베크가 “임대료 통제는 폭격 다음으로 도시를 파괴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했고, 하이에크나 프리드만, 스글러 등은 “임대료 통제라는 흔한 역설”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임대료를 규제해도 공급하는 공공(사회)주택이 있다는 점이다. 비엔나는 사회주택의 비중이 40%가 넘으며 ‘살기 좋은 도시’ 세계 1위를 십수 년째 놓치지 않고 있다. 임대료 통제가 아니라, 집을 안 지어서 도시가 망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자유방임시장이 아닌 규제영역에서도 주택을 공급·관리하는 주체들과, 이들이 집을 지을 수 있는 금융지원 구조, 나아가 ‘투명하고 합리적인 임대료 체계’를 만들고 운영하면서 주거환경의 품질을 보장하는 방법이다(그중 하나가 ‘공공주택 유형통합’ 이후 통합임대료체계를 민간에도 적용하고, 이를 위해 민간주택 소유주에게는 적절한 인센티브와 규제를 병행하는 ‘대중복지의 수평적 확대’ 방식의 접근(최경호 2021b)이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면, 제도가 미비했던 시절 유동화 매개를 담당했던 다주택자들의 역사적 공로를 인정하되, 이제는 지속가능한 공동의 미래를 위해 통합임대료 체계 속에서 임대료 통제와 세제 혜택을 동시에 받거나, 그것도 싫으면 공공복리를 위해 사유재산에 대한 일부 제약을 받아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6절의 주택수용제). 또한, 임대료 규제로 인하여 위축되는 일반적인 수선유지뿐만 아니라 저층 주거지의 그린 리모델링 등을 선도할 지역재생회사(CRC)와 같은 다양한 주체를 육성하는 것이, 무조건적 ‘큰 정부론’이든 관료주의에 따른 것이든 공기업 중심주의에 갇히는 것 보다 미래지향적일 것이다. 


6. 구체적 정책과 기획

  1) 환매보증부 주택
  환매보증(+조건)부 주택은 소유권, 사용수익권, 처분권 중에서 처분권을 일부 제약해서 공급자에게 되팔게 하는 제도다. 전세수요를 흡수하기 적합하며 수요자의 자산축적에도 도움을 줄 수 있기에, 토지공개념 전면화 이전의 과도기에 특히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입주자의 의무를 강조하면 환매조건부, 공급자의 의무를 강조하면 환매보증부 네덜란드에서는 주택가격 하락으로 시장이 얼어붙었을 때, ‘원할 때 되사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사라’는 차원에서 도입되었다. 
라고 부를 수 있다. 토지나 건물지분을 일부 공유하면 현재의 민법체계에서도 공유지분권자의 권한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사유재산침해의 논란을 방지할 수 있으며, 환매시기에 따른 가격 책정방식, 지분구조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설계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에서는 ‘공공자가’라는 이름으로 추진 중이다. 각 당의 경선과정에서 정의당의 황순식(공존주택), 민주당의 박용진(가치성장주택)과 이낙연, 국민의힘의 윤석열(청년원가주택)이 제안했으며, 이와 유사한 것을 원희룡(반반주택)과 이재명(기본주택 분양형)도 이야기했다(표3). 

[표 3] 대선주자 공약 중 환매보증부 및 이와 유사한 주택 정책의 비교

* 표가 제대로 업로드 되지 않으니, 해당 표 등을 자세히 보실 분은 첨부한 pdf 파일을 참조 바람.
 


  환매의무가 없는 기존의 공공분양주택이나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민간주택의 문제점은, 흔히 지적되는 ‘첫 분양자가 시세차익을 독식한다’는 점 외에도, ‘손바뀜이 몇 번 일어나다 보면 결국 다주택자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주목하여 ‘공존주택’의 경우는 다음 입주자도 역시 저렴한 주택에 입주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강조했고, ‘가치성장주택’은 ‘같이 성장’이라는 메세지와 함께, 시세차익의 일부는 그래도 첫 분양자도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청년원가주택’이 첫 입주자의 반발을 의식해서 배분율을 7:3으로 설계한 것은 세대 간 형평성 차원에서는 문제가 있으나, 아예 환매의 의무조차 없이 공공이 지분투자만 하고 수익을 나눠가지는 ‘반반주택’ 보다는 공공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주택가격의 50~75% 수준에서 공급할 경우, 환매주택에 대한 입주자의 부담수준은 전세와 유사하다. 그러나 시세차익을 일부 가져갈 수 있고, 어쨌든 ‘내 집’이므로 원하는 기간만큼 살 수 있으며, 보증금 미반환의 리스크나 매각시점에서 안 팔릴 걱정이 없는 대신, 세금은 원칙적으로 내야 한다는 점이 전세와는 다른 점이다. 환매주택의 환금성은 웬만한 자가보다도 뛰어나기에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측면도 있다(꼭 자산가치 상승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이사 가고 싶을 때 이사 갈 수 있는 점, 즉 ‘환금성’이 높다는 점에서 매도인과 매수인의 규모의 경제가 성립하는 ‘대단지 아파트’에 대한 선호가 강한 측면도 있다.) 지분적립형 주택이나 토지임대부 주택과 결합시킬 수도 있다. 무엇보다 장점은 ‘접근성은 높이면서도 투기는 차단하는 주택’인 점이다. 환매가 상호의무이니 주택가격의 100%까지 대출을 해줘도 주택가격 상승을 부채질하지 않고, 부실대출의 우려도 없다. 
  
‘기본주택 분양형’과 같이 공공이 토지를 보유하고 토지임대료를 받는 토지임대부 주택은 공공성의 정도는 가장 높지만, 현실에 바로 적용하기엔 조금 심각한 문제가 있다. 먼저 수요자 입장에서는 반전세보다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건물가격 3억에 토지임대료 30만원 수준으로 설계된 토지임대부 주택의 경우,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보증금 3억에 월세 30만원을 내는 반전세나 다름없다. 문제는 반전세의 보증금은 명목상 돌려받을 수 있지만, 건물가치는 감가상각하기에 토지임대부는 나중에 원금을 보장받을 근거가 따로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토지의 지상권을 획득하거나 환매특약 같은 것을 맺어야 하는데, 건물 가치 이상의 가격을 지불한다면 환매기관은 자칫 배임의 소지가 있고, 지상권이 너무 저렴하면 입주자에 대한 특혜 시비가 있을 수 있다. 이 제도가 활성화된 싱가포르 같은 경우 이미 국유지가 80%라서 다른 집도 비슷한 상황이고, 토지임대료는 상징적인 액수만 초기에 일시불로 (주택가에 포함해서) 지불하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토지임대부 주택은 중장기적으로 ‘환매보증부’ 주택이 어느 정도 안착되고 ‘토지주택은행’제도를 통한 공공 보유 부동산이 충분히 확보되었으며 세제의 정비를 통해서 소유부문의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가 줄어들게 되는 시점에 신중히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따지기보다 동시에 추진하면 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개별 입주자에게 리스크가 전가되는 정책을 추진하기보다는, 당장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같은 기관을 유동화 매개기관이자 거버넌스 파트너로 삼아 추진하는 것이, 주택 관리, 재무적 안전성 및 운영 시 쏟아져 나올 제도개선 과제 측면 등을 고려할 때 안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비용 유동화의 고민을 일종의 할부판매로 풀어낸 ‘지분적립형 주택’에도 시사점을 준다. 현재의 ‘누구나집’ 같은 경우, 지분적립 시마다 수천 명의 입주자가 공급자와의 지분 변경에 대한 등기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나, 이후 환매 조건이 없어서 시세차익이 사유화되는 것을 생각하면, 입주자협동조합이 법인 대 법인으로 지분을 적립해가며 개별 분양 없이 조합원이 공유하고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위스테이’ 같은 모델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2) 공공택지 내외의 공공성 확대  
  앞으로의 문제는 공공택지 외에서의 공공성 확대다. 앞서 지적했듯, 신도시에는 소셜믹스(계층혼합)를 위해 20% 정도는 민간주택을 허용하는 것이 해당 공공택지의 공공성 구현 차원에서 더 의미가 있다. 한편 그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기존에 공공주택이 부족한 지역에 향후 순증 물량을 무조건 공공주택으로 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일지 모른다. 3기 신도시 이후 더 이상 대규모 신도시 개발은 지양해야 한다면, 앞으로는 신도시의 택지개발보다 더 중요해질 재개발(+재건축) 과정에 공공이 적극 개입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1970~80년대를 거치며 국가가 적극적으로 토지를 구획하고 수용해서 ‘아파트 단지’로 만들고 주민들에게 소유권을 이양했는데, 이 주민들이 만든 ‘조합’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 지금의 ‘봉건적 단지권력’의 폐해다. 택배 노동자와의 분쟁, 장애인 주차구역 벌금 대납을 거쳐 최근엔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를 ‘남의 아파트 놀이터에 오면 도둑’이라 하며 관리실에 억류하는 사례 [팩트체크] ‘남의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면 주거침입? (연합뉴스 2021. 11.11. 장하나 기자)
들은 작은 징후에 불과하다. 건설사들을 줄세우며 각종 비리로 조합장들이 연달아 구속되는가 하면, 개발이익 최대화를 위해 재건축 공정을 미루는 일도 다반사다. 공공성이 높아도 개발이익이 조금만 낮아지는 계획안은 가볍게 거부할 힘이나, 주변 기반시설에 들어간 비용은 사회화하고 이익은 사유화하려는 시도는 민주적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 
  토지지분이 가지는 현재의 정치적 권한을 인정한다면, 늘어난 주택 물량의 일부를 공공주택으로 기부채납 받는 것 보다, 증가한 용적률만큼은 무조건 공공의 지분으로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필요하다면 토지주택은행제도를 활용해서 충분한 토지지분을 확보한 다음, 공공의 지분만큼 공공주택을 지으면 된다. 처음 도시화가 될 때는 주택난으로 허겁지겁 대규모로 지었지만, 철거이주민의 문제와 40~50년 뒤의 재-재개발을 생각하면 중소단위 순환식 재개발을 해야 하는데, 이로 인해 사업성이 떨어지는 것도 공공의 개입이 필요해지는 이유다(건물 노후도가 심각하여 거주가 불가능할 지경인데도, 임대주택이 들어오는 것이 싫다는 이유로 부재지주가 재개발을 거부한다면, 현재 법체계 내에서도 강제철거는 가능하다.) 
  또한, 공공이 할 일은 저층주거지의 ‘생활SOC’의 확충이다. 공공택지를 넘어 국토 공간에 대한 종합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아파트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부대복리시설을 운영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공공이 ‘단지 안에서 알아서 해라’라고 손을 놓아버리면 자체적으로 이런 시설을 운영할 수 없는 지역의 주민들은 소외된다. 이에 따라 신축아파트 선호와 가격폭등 문제가 심해지지만 전 국토를 다 아파트 단지로 구획할 수는 없다. 주거 문제는 단위 주택을 넘어 근린환경 차원에서 다루어야 하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환수할 개발이익은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시세차익에서 자유로운 공급자금융구조 구축을 대안의 출발점이라 앞서 강조한 이유다.

  3) 임대료 동결
  앞서 단일모델에 속하는 곳들은 살펴보면, 30~40년의 장기저리 주택금융은 물론, 임대료 규제나 주거보조비 제도가 모두 작동하고 있다. 이들의 경우 사회주택에 대해 공공이 본격 지원에 나선 계기는 전염병의 창궐로 인한 도시의 광범위한 위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임대료 통제나 주거비 보조 같은 경우는 전쟁 시기 국민의 동원에 따른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려는 차원에서 도입되기도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코로나 위기로도 충분히 비상한 상황이다. 세금을 올리는 문제는 조세정의의 논리로 풀어야겠고, 세입자의 처지를 정말 생각한다면, 동시에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도 돕겠다면, ‘주거전용차로’ 건설을 위해 이제는 임대료에 눈을 돌릴 때다. 전체 23%의 월세 가구들에겐 이미 ‘전세자금 대출’도 남의 나라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정의당마저 ‘종부세’나 1가구1주택을 위한 ‘구입자금 대출’에만 신경 쓴다면 40%에 가까운 임차인들의 처지는 누가 챙길 것인가.
  당장 몇 년간의 임대료 동결은 의지만 있다면 헌법 76조에 나온 대통령의 긴급입법/처분권으로도 가능하다. 자가집단의 주택구입자금에 대한 공제혜택 같은 것을 논의하기 이전에, 코로나 위기 극복 시까지로 한정해도 좋으니 우선 월세와 전세자금 대출이자를 함께 동결하자. 이에 따라 심각한 위기에 빠지는 임대인이나 은행이 있다면, 필요에 따라 그들의 신청을 받고 상황에 맞춰 지원하면 된다. 임대료 규제가 없다면, 모두에게 재난지원금을 지원해봤자 임대료와 자산가격만 오른다.
 
  4) 주택 수용
  통합임대료체계는 일정 수준 이상의 고급 민간주택에는 적용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적용대상 주택에 해당할 경우, 이 체계를 따르면 세입자의 편익에 비례하여 인센티브를 주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공공이 수용을 하도록 하는 방법은 그 자체로 주택을 확보하거나, 통합임대료체계를 수평적으로 확산시킬 방법이다. 이미 헌법재판소는 민간사업자의 주택수용을 합헌이라고 판결한 바 있는데(재개발 과정에서 건설사가 개발 예정지의 80% 이상을 이미 취득할 경우, 나머지 20% 이하의 땅에 대해선 3개월 동안의 협의를 거쳐 무조건 시가에 매수할 수 있다고 2009년에 판결했다.), 공공복리를 위해 공공이 나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 
  증여 등으로 인한 일시적 다주택자나, 수용에 들어갈 공공재원 및 관리체계 정비의 문제를 생각하여, 우선은 5주택 이상 소유자의 5번째 주택부터 수용하는 것을 정의당 대선 경선에서 황순식 후보가 제안한 바 있다. 이 주택들만 해도 약 90만호로 추정된다(법인 보유나 공동지분 소유 등에 대한 다주택자 보유주택 통계가 세밀하지 않기에 총 주택수에서 4주택 소유자까지의 소유주택수를 빼는 방식으로 역으로 추산한 결과다.). 분양전환하지 않는 장기공공임대주택과 비슷한 수치다. 보증금과 주택가격의 차액만큼만 지불하고(일종의 ‘공공갭투자’다) 현 세입자를 승계하면서 인수하면 전월세난도 일으키지 않으며, 공공재원도 ‘갭’만큼만 필요하다. 심지어 일시불로 주지 않고 주택연금식으로 지급해도, 아직도 4주택이나 보유한 이들이 생계에 곤란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현 세입자가 원할 경우, 인수의 우선권을 주되 환매주택으로 공급하면 손바뀜이 일어나도 다주택자에게 넘어가지 않는다. 5주택 이상에 대한 수용 이후에 필요하다면 4주택 이상에 대한 수용도 논의할 수 있다.


7. 국가론 – 그 외 분야와의 관계

  그런데 이러한 주장들은 소선거구-단순다수 대표제에서 지역구에 출마하는 정의당 후보는 하기 힘든 이야기이다. 비례성을 높여 세입자의 목소리도 충분히 반영되게 하지 않으면, 그 누가 와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선거제도 개편은 주거체제의 전환을 위한 중요한 정치적 과제 중 하나다. 공간적 차원에서는 국토 균형발전의 관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현재의 단핵 과밀 성장모델인 수박형 국토를, 분산된 다핵의 업무지구끼리는 쾌속 연결하고, 다핵 내부에서는 탈탄소 15분 도시를 실현하는 방식인 포도송이형 국토로 바꿔나가야 한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사회보장체계와도 관련이 있다. 공적인 노후보장이나 돌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믿을 것이라고는 부동산 자산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어쩌면 부동산 문제는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 보다, 연금이나 교육제도가 바뀌면 더 쉽게 바뀔지도 모른다. 사회보장, 교육, 보건의료, 주거 등 ‘복지국가의 4대 기둥’(Kemeny, 2001)들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정의당은 이러한 주거와 관련한 다른 분야의 과제들(표4)을 해결해가면서, 복지국가의 비전으로는 ‘8대 기둥’을 내세우면 어떨까 한다. 21세기 진보에 대한 정의당의 전망은 20세기 후반 유럽 복지국가들의 4대 기둥을 넘어, 교통, 에너지, 인터넷, 돌봄까지 포괄하면 좋겠다. 

[표 4] 주거체제 전환을 위한 부문 내외 분야에서의 과제들

* 표가 제대로 업로드 되지 않으니, 해당 표 등을 자세히 보실 분은 첨부한 pdf 파일을 참조 바람.



8. 나가며 

  정책은 계획의 교집합이다. 주택 정책의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지자체의 도시계획과 지구단위계획, 국가의 국토계획, 주택종합계획 등 숱한 계획이 교차한다. 저마다 5년 단위도 20년 단위도 있다. 여기에 기업의 사업계획이나 유력가 자제의 퇴직금 지급계획, 정치인의 다음 선거를 위한 실적 계획, 개인이나 가족의 진학과 취직, 결혼이나 이사, 은퇴계획도 교차할 것이다. 누구나 일터에서 무사히 돌아와 편히 몸을 누일 수 있도록 주거체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이 모든 계획의 체질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계획에 대한 영수의 독백을 되새기며 마친다. 


그때 아버지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사람은 개천에 다리를 놓고, 도로를 포장하고, 우리 동네 건물을 양성화시켜 주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어른들을 따라 크게 크게 손뼉을 쳤다. 다음 사람은 먼저 사람이 다리를 놓고, 도로를 포장하겠다고 하니 구청장으로 보내고, 자기는 이러 이러한 나라 일을 하겠으니 그 일을 하게 해 달라고 말했다. 어른들은 또 손뼉을 쳤다. 우리도 따라 쳤다. 커서까지 나는 그때 일을 종종 생각하고는 했다. 두 사람의 인상은 아주 진하게 나의 머릿속에 남았다. 

나는 그들을 증오했다. 그들은 거짓말쟁이였다. 그들은 엉뚱하게도 계획을 내세웠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계획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많은 계획을 내놓았었다. 그런데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설혹 무엇을 이룬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고통을 알아주고 그 고통을 함께 져 줄 사람이었다.

                       -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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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 (2021b) “주거선택권을 보장하는 수평적 대중 복지를 향하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서울하      우징랩&집걱정없는세상연대 주최 주거권 보장을 위한 연속토론회 제 6회 <공공주택의 공급 확충과    위상제고> 발제문(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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